[미담사례특집 3부작](사)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중앙회 이선구 이사장(목사)
[미담사례특집 3부작](사)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중앙회 이선구 이사장(목사)
  • 원덕호 기자
  • 승인 2019.03.26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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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녕하십니까? 이사장님. (사)사랑의 쌀나눔운동본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많은분들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계시는데 언제부터 시작하셨고,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시는지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료급식은 12년 전에 시작을 했습니다. 노숙인 들한테는 쌀을 줘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밖에서그냥 길거리에서 잠자고 그러니까요. 그래서 쌀은 불쌍한 노인 분들이나 쪽방 촌에 다가 나눠주고노숙자들한테는 밥을 해주는 걸로 해왔습니다. 그리고 밥을 먹이고 이제 한 12년 정도 되다보니까뭐 여기저기서 “목사님, 이사장님 우리도 밥 차 운영을 좀 해서 도와주세요.” 그래서 시작 한 게 첫해
서울역을 시작으로 부평역을 거쳐 이제 10년 정도 됐습니다.

부평역 광장에도 한 500명의 식수 인원이 있는데 그전에는 한 900명 되다가 너무 많아서 서울서 오거나 경기도서 오는 분들은 “인천만오십시오.” 하면서 돌려보냈어요. 그래 김당할 수 있는 500-600명을 지금까지 한 10년 동안 급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인천 남구 주안역에서도 무료급식을 좀 해 달라고 해서 남구 주안역 광장에서도 한 9년 전부터 밥 차 운영을 해서, 거기도 한 400명 정도 급식을 하고 있습니다.또 여기 계양에서도 급식을 하는데 이것도 한 7년 됐고, 서울역을 필두로 해서 지금 경기 화성 시,인천 해가지고 여섯 군데에서 급식을 하고 있습니다, 전라북도 정읍, 고창, 전주, 군산 4군데에서도 급식을 하고 있고 그래서 지금은 전국 11군데에서 급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현재 부양 하는 식구들 즉, 밥을 먹이는 분들이 5,500명 정도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다섯 식구, 여섯 식구 부양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제 어깨에 걸리는 저희 부양가족이 5,500명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제가 하는 것은 아니고, 다 국민 여러분들이 도와주시는 겁니다. 아울러 자랑스러운 거는 제가 국가에서는돈 1원도 안 받고 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어떤 분들은 정부에 지원금을 요청해서 예산을 타내서 막쓰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여러분들이 인터넷에서 검색하시면 아시겠지만 이선구 이사장 사랑의 쌀나눔운동본부는 정부예산 1원도 안 쓰고 있습니다. 모든 경비는 국민여러분들께서 자발적으로 지원해 주십니다.
 

2. 어려운 일도 많았을 텐데요. 이사장님이 느끼시기에 가장 어려운 시기, 즉 사랑의 밥차 운동의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으며 어떻게 재기할 수 있었습니까?

7년 전에 불이 났습니다. 밥 차 기지가 행주대교 밑에 있었는데, 독지가가 약 700평의 땅과 건물2~300평, 약 900평 정도를 무상으로 사용을 하게끔 해서 한 5년 동안 아주 잘 사용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근 음식점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완전히 전소되었습니다. 밥 차 기지의 식품창고, 밥차, 물탱크, 의류창고 등이 전부 불에 타 없어진 겁니다. 어려운 소외 계층한테 드리려고 잔뜩 모아놓은 의류도 전부 재가 되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숟가락 하나도 없고, 몇 천개 되는 식판도 다 버려서 아무것도 없는 제로 상태니까 어쩔 수 없이 폐업을 해야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극한의 상황에서 저는 놀라운 것을 경험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어려울 때 금모으기를 해서 대한민국을 살렸듯이, 우리 밥 차가 불타고 있는 모습이 모든 TV방송에 다 나가니까 그 위대한공동체 의식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케이블 방송, 대형 공영 방송과 해외방송까지 나가다 보니까 국민들의 성금이 많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당장 또 월요일부터 급식을 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월요일 날은 어떤 분이 추어탕, 장어탕 해갖고 와서 먹고, 화요일 날은 또 한솥도시락에서 약 700개의 도시락하고 반을 해 와서 또 먹고, 수요일 날은 또 짜장 차 전문으로 하는 분이 오셔서 한 700그릇을 기부해 주시고, 또 어떤 분은 설렁탕을 해오시고, 금요일 날은 또 본죽 도시락에서 고급 한정식 도시락을 700개 해 오시는 겁니다. 또 영
등포역 호수 삼계탕이라는 데서 들깨 삼계탕, 그 비싼 것을 또 한 트럭을 싣고 오셔서 또 그것을 먹이게 되었습니다.

전국에서 지원이 몰려오는 데, 불고기를 500명분, 또 700명분, 1000명분을 해 주시는 겁니다. 불고기, 밥, 떡 등을 가리지 않고 전국에서 후원물품이 밀려오는 겁니다. 이렇게 온전히 다 같이 힘을 합해서 노숙자들에게 밥을 먹일 수 있었습니다. 밥 차가 불타고 밥 차 기지가 불타
서 숟가락 하나도 없었지만, 일회용 숟가락에 일회용 접시를 동원해서 지금까지 12년 동안 단 하루도 멈추거나 빼먹은 적이 없습니다. 그건 아주 자랑스럽게 어디 가면 제가 가장 힘줘서 자랑할 수 있는데, 국가적인 재난인 사스가 오고, 메르스가 왔을 때에도 다른 봉사 단체는 문을 닫아도 저희는 문을 안 닫았습니다. 왜냐하면 노숙자 밥을 먹어야 되는데, 전염병 때문에 문 닫는 것은 우리들 생명을 생각하는 거지 노숙자들을 생각한 건 아닙니다. 노숙자들은 밥을 안 먹으면 면역력이더 떨어져서 질병에 더 잘 걸려요. 저는 사명감이나 의무감을 갖고 노숙자들한테 무슨 질병이나 전염병이 퍼지더라도 봉사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노숙인 들은 다 손을 씻겨서라도 식사를 하도록 했습니다.

쪽방 촌 노인들한테도 그렇게 해서 한 끼를 안 굶기고 식사 제공을 햇습니다. 그것은 제가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세상을 떠나는날까지 하루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제 사명 입니다. 그렇게 저희는 밥 차
로 5,500명을 부양을 하고 있고요, 이것은 각국민들의 후원금입니다. 거기에는 아이들이 보내는 1000원짜리 코흘리개 돈까지 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보내는 성금으로 운영이 되고 있으니 배고픈 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 국민의 명령이라고 믿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가장 큰 힘을 주고 있는 원동력은 착한 사업장
이라고 해서 중ㆍ소상공인들 이신데, 시장에 있는 분들 200여 업체가 고춧가루도 보내고, 된장도 보내고, 쌀도 보내고, 야채도 보내고, 과일도 보내십니다. 그 힘들이 모아져 부식이 공급되면 5,500명이 드실 식사의 반찬을 만들어서 따뜻하게 그분들한테 대접하고 있습니다. 정말말 그대로 착한 사업장 200군데가 저희와 지금같이하고 있습니다. 연안부두의 신한수산 신한유통의 최 사장님 같은 분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가을 전어 얼마나 맛있고 비싸요, 근데 그분은 살아있는 가을 전어를 한 5,000마리를 보내세요. 이거 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 노숙인
들, 쪽방 촌 노인들 해드리게끔 하세요. 또 어느날은 방어 이렇게 큰 방어 회 떠서 먹을 수 있는 살아있는 ‘팔딱팔딱’ 뛰는 방어도 500마리,1000마리 씩 보내세요. 정말 그런 분들의 따뜻한 사랑과 정신, 그런 여러 분들의 헌신 하고자 하는 마음이 모아져서 이분들을 지금까지 부양을 하고 있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3. 밥을 지어드리는 방식과 그 외에도 다양한 구제와 봉사를 하시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이제는 밥 차 말고 또 할 일을 찾았습니다. 어려운 분들, 차 상위 계층의 위기가정, ‘송파 세모녀’ 같은 그런 사람들이 엄청 많거든요. 차 상위 계층은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호적상에 주민등록상의 아들, 딸이 있어요. 그런데 그 아들, 딸들이 장애가 있거나 또 부도가 났거나 망했거나 어쩌고해서 그 어머니 홀어머니라던가 홀아버지라든가 이런 부모님을 노후의 생활해야 될 보살필 노인들을 안 찾아보는 겁니다. 자기들이 어렵고 보니까 그게 쪽방 촌 노인들은 버려진 겁니다.


현대판 고려장입니다. 3~5만 원짜리 9.5평에서 발도 못 뻗는 조그마한 닭장 같은 데가 쪽방 촌인데그 분들한테는 자식들이 안 찾아 와요. 그러니까 우리가 식사도 대접하지만 쌀도 드리고 또 부식도드리고 뭐 이런 것들을 도와 드려서 잡수시게끔 쪽방 촌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저희가 당산역이나, 부평역이나, 부암역이나, 또 강남구청역이나, 당고개역, 수서역,등등 많은 곳에 쌀독을 사랑의 쌀독을 열어 놓고 역무실에다가 쌀을 맡겨놓고, 2Kg씩 오시는 분들한테 등록된 분들한테 나눠주게끔 공익근무자들이 이제 역무실에 쌀을 20Kg을 주면 10 봉지로 나눕니다. 2Kg씩 그걸 나눠서, 오시는 분 명단 있는데 그분들한테 드려요. 그렇게 해서 한 달에 4번 받아 가시니까 인제 8Kg이면 혼자 충분히 잡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쌀을 받아 가시는 분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저희가 지금 국내 24군데에서 쌀을 나눠드리고 있는데, 이 24군데 되는 쌀독을1000개로 확대하려고 지금 계획하고 있습니다.

주로 역전과 교회로 할 예정인데 현재, 역전은 9군데에서 하고 있고 교회가 15군데입니다. 이것을 전부 합쳐서 24군데인데요. 교회도 다양합니다. 교회는 오래된 교회, 큰 교회, 작은 교회를 가리지 않고 15군데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도 전국으로 확대해 나가고 지하철역도 확대해 나가고 그래서 아주 어려운 차상 위 계층, 위기 가정, 기초 생할 수급자분들을 지원해야 하는데, 그 분들 명단은 동사무소나 구청이나 그런데 에서 추천을 해주세요. 우리 사랑의 쌀 나눔운동본부로 공문이 옵니다. “이런 분들이 안타깝고 불쌍한 분인데 기관이 쌀을 좀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분들을 우리가 어느 지역이나 그렇게 등록을 해서 쌀을 나눠드리게끔 합니다. 그래서 쌀을 가져가는 분들이 지금 현재 한 달에 35,000명 정도 됩니다.

그럼 1년이면 40만 명 정도가 쌀 모으기를 하는 건데요. 제가 그걸 1년에 40만 명을 100만 명 정도로 확대를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달에 70-80만 명, 또는 100만 명에게 쌀을 나눠주는 걸 확대를 해야겠다. 계속 확대해 나가서 1000군데에 사랑의 쌀독을 세우고 싶습니다. 앞서서 첫 번째 저희 사랑의 빨간 밥 차는 지금 전국에 11군데에서 밥 차를 운영하고 있다고 그랬는데, 밥 차의 비전은 우리전국의 16개 시•도 연합회 그 다음 265개 각 시•군•구 그래서 밥 차를 최소한 20대 정도는 운영을 하면 좋겠다. 이렇게 제가 일차 목표를 20대를 잡고 있는데 “20대가 왜 20대냐” 하면 밥 차 한 대연인원 10만 명을 소화해 낼 수 있거든요. 그러면 20대면 200만 명 돼요. ‘200만 명 어느 정도는 소외계층의 식사를 대한민국에서 나눠 드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고 그 다음에 쪽방 촌에 전국에있는 쪽방 촌에 어르신들, 또 특별한 중증장애로 고통 받는 분들, 또 차상 위 계층, 이렇게 어려운 분들한테 또 연간 월 7-80만 명에서 연간 1000만 명 정도 쌀과 밥을 나눠드리면 대한민국의 굶주림은어느 정도는 해소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 내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는 게 북한이에요.

북한에 우리 동포들 함경북도 특히 고난의 행군 때 많이 죽어가고 불쌍한 분들인데 함경북도뿐만 아니라 북한에 제가 사랑의 쌀독을 세우려고 또 사랑의 빨간 밥 차를 가지고 들어가겠다고 전 농림부장관 했고, 전 5선 국회의원이었고, 사랑의 쌀 나눔 운동본부의 상임 대표 회장을 맡고 있는 우리 김영진 상임 대표하고 저하고 북한 정부쪽에 얘기했습니다. 우리 남한의 정서상에는 쌀을 북한에 준다면 그게 군량미로 가고 군대의 전투식량으로 간다고 해서 쌀 도와주는 걸 반대하잖아요. 정부도 못 도와주고 있고, 그래서 쌀보다는 우리 밥 차를 가져가면 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죠. 밥을 바로 해서 먹이고 하는 거니까. 그렇게 하면 많은 국민들이 같이 동참해서 북한에 고향을 두고 있는 분들은 아마 밥 차 지원하려고 서로 그럴 거예요. 또 지금 제가 북한에 밥 차 가지고 가는 문제를 북한 정부쪽하고 얘기하고 그러니까 “목사님 밥 차 가면 북한에 저 봉사하러 꼭 데러가 주세요.” 하는 분들이 엄청 많아요. 그래서 밥 차를 가지고 가는 것을 지금 정부
고위층 또 국회의 오래된 분들이 같이 논의해서 사랑의 쌀 나눔운동 본부에서 밥 차를 보내는 것을 아마 이렇게 협의하거나 하는 것이 있을 겁니다. 또 고위층에 있는 분들이 저를 통해서 밥 차 보내는 걸 상의한 적도 있었고 한데 제가 밥 차를 가지고 밥 차 군단을 끌고, 소떼의 군단 소떼 끌고 가는 게아니고 밥 차 군단을 끌고 북한 전역에 밥 차를 보내는 것을 제가 추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국민여러분들이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4. 사랑의 쌀나누기 운동이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국제적인 봉사단체로 거듭나는 과정에 있다고 하던데, 매우 궁금합니다.


밥 차와 또 쌀 나눔을 그렇게 해서 국제적으로 지금 국내시장의 쌀독 외에 해외에도 이제 저희가 23개국에 사랑의 쌀독을 세우고 23개국에 지부를 설치해서 운영을 하는데 아프리카 이태석 신부 하여튼 남 수단을 비롯해서 그 옆에 탄자니아 지금 저희가 모잠비크를 또 지금 세우고 있고요. 우리 원덕호 대표가 저하고 얘기를 했는데 제가 며칠 후에는 몽골을 가서 다음에는 몽골에도 운동본부 지부를 만듭니다. 스리랑카, 필리핀, 라오스 공산국가,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또 저 남미에 파라과이 이렇게 여러 어려운 나라들 베트남도 있고요, 그렇게 해서 23개국에서 지금 어려운 분들한테 쌀을 나눠주고 의류도 나눠주고 하는 좋은 일들을 우리 대한민국 이름을 걸고 좋은 일들을 하게끔 하고 있습니다.그래서 23개국에서 사랑의 쌀 나눔을 극빈 촌에 쌀 나눠주고 아프리카 같은데도 그렇고 말레이시아의 송찬석 지부장 같은 경우에는 밀림에 있는 원주민들한테 쌀을 주는데 원주민들이 사냥해서 먹고 사냥해서 짐승을 잡아서 식량으로 쓰고 하던 것이 너무 고갈되니까 먹을 게 없다는 겁니다 사냥할게. 우리가 쌀 주면 잔치가 벌어지고 또 옷도 주고 신발도 보내고 아프리카 아까 저한테 남수단에 ‘임흥세’ 지부장이 다녀갔는데 여러분이 아시지만 홍명보 국가대표 축구선수 감독 아시죠? 홍명보감독을 키운 어릴 때부터 키운 ‘임흥세’ 감독이 아프리카 남수단의 지부장인데 남수단의 국민적 영웅입니다. 거기는 아직 국가 올림픽도 없고 국제 올림픽도 없는 거를 그분이 다 만들어서 국민적 영웅 대우를 받고 있는데, 그분을 통해서 의류도 많이 보내니까 오늘 저한테 가져온 것이 남수단 교육부장관이 며칠 있으면 들어오는데 상을 가지고 왔더라고요, 상장을. 남수단이 지구촌에서 제일 못사는 나란데 의류나 뭐 여러 가지를 엄청나게 보내고 있는데 1년에 아마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제가 보내는 것이 한 10억에서 20억 원 가까이 콘테이너로 여러 개 의류도 보내고 신발도 보내고 뭐도 보내고 많이 보내서 대한민국을 빛내도록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다 도와주신 덕으로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우리가 못 살았을 때 생각해서 또 6.25때 아주 피폐하고 굶주렸던 우리 대한민국을 살려준 여러 나라들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생각 해서 필리핀도 지부를 세운지 8년 돼가고 상당히 의료선교도 하고 쌀도 주고 많은 옷도 엄청보내고 있습니다. 1년에 필리핀은 제가 보기에는 한 20-30억 원어치 옷을 보낸 것 같아요. 그래서 거기 상당히 많은 사
람들이 좋은 옷을 입고 있는데, 그것도 업체에서 다 도와주셔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5.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은 착한도시만들기 운동과 효문화 운동으로까지 승화되고 있다고 주변의호평이 대단 하던데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총체적으로, 포괄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나라 곳곳을 우리 부패방지 국민운동본부에서 부패방지를 위해서 나라의 살림이 올바르게 쓰이고 좋은 나라가 되자 하는 취지로 활동 중이신데, 저하고 똑같은 게 뭐냐면 저는 착한도시 만들기 운동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습니다.지금 한 7년 됐는데요. “착한도시 운동이 뭐하는 거냐?” 착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입니다. 착한 사람들 착한 사람들이 “뭘 착한 일을 하냐?” 요즘 대한민국의 효 문화가 거의 상실되어 가는데 효 문화를회복 시켜야겠다고 다짐 하였습니다. 어른들 잘 섬기고 힘없는 노약자들 잘 모시고 그렇게 하는 것이 착한 사람이다.


그것보다 구체적으로 저희가 하고 있는 것은 여름에 삼복더위에 노인들, 장애인들 힘없고 하는 사람들한테 몸을 보신할 수 있도록 삼계탕을 전국적으로 대접을 합니다. 많은 곳에 삼계탕을 저희가 후원 받아서 삼계탕 행사를 하는데 재작년에는 기네스북에 올라갈 정도로 저희가 큰 행사를 한것이 우리나라 독거노인 수가 140만입니다.

140만 삼계탕 행사를 재작년 8월 16일 날 말복에 행사를 해서 기네스북에 등재가 돼서 최다많은 장소에서 최다 많은 삼계탕 행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들 또 몸을 제대로 못가누시는 장애인들 이분들한테 삼계탕을 삼복에 대접하고 또 설날 또 추석날 설날에 떡국 대접하고 추석이면 송편 대접하고, 그다음에 매달 외로운 분들이 못 하는 게 뭐냐면 가족이 없으니까 생일잔치를 못하는데 생일잔치를 못하는 그 어려운 분들을 모아서 합동 생신잔치를 해드리는데,그것이 저희가 지금 한 90회가 넘어갔습니다.


그러니까 한 8년 정도 되었다는 이야기죠.착한도시 만들기 운동본부는 ‘우리나라의 사라져 가고 상실되어가는 효 문화를 회복시켜야 되겠다.’라는 마음에서 착한도시 만들기 운동본부를 시작했는데요. 지금 한 8년 정도 됐습니다.


그래서 매달 의지할 곳 없고 가족 없고 하는 홀몸 어르신들 독거노인들 이분들을 대상으로 해서 한 달에 한 번씩 합동생신 잔치를 해드려요.이번 10월이면 10월 달에 생신 맞은 분들 주민등록을 확인해 가지고 11월은 11월에 해서 1년에 12번 합동 생신잔치를 해드리는데, 그분들한테 조촐한 선물을 양말, 또 쌀, 식량 ,그다음에 후원받은 식료품들, 이렇게 해서 생신 선물을 드립니다. 합동생신을 8년쯤 지금 90회가됐으니까 8년쯤 되다보니까 알려져 가지고 남구도 하고 부평구도 하고 서구도 하고 게양구도하고 각 구마다 빵집들에서 케익을 8개, 10개씩 막 이렇게 후원을 해주셔서 합동생신 때 케익에 촛불을 켜는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 됩니다.

그 다음에 저희는 생일날이니까 소고기 미역국도 해드리고 떡도 해드리고 해서 합동으로생신잔치를 합니다. 부평역 밥 차운영 시에 하고, 서구에도 하고 남구에도 하고 게양도 하고이런 식으로 지역 마다 합동생신상을 차려 드려서 효 문화를 회복시키고 젊은이들이나 일반시민들의 본이 되게끔 이런걸 보고 깨닫게 끔, 그일을 저희가 계속하고 있고요. 앞으로도 계속할생각입니다. 그 다음에 1년에 한번 아주 큰 행사를 합니다. 인천 300만 대상으로 해 가지고10개 군ㆍ구에도 있어요. 구청이 8개가 있고,옹진군, 강화군까지 해서 10개의 군ㆍ구인데10개의 군ㆍ구에도 저희가 미리 공문을 보내서이번에 저희가 5월 달에 할 때에는 39년생이80이에요. 팔순, 이제 내년 5월에는 40년생이되는 거죠. 작년에는 38년생이 했고 그래서 80이 되시는 노인 중에 가족이 없어서 팔순잔치못하신 분들은 전부 저희가 인천시 전역을 상대로 해서 공문을 보내서 추천을 받아 합동 팔순잔치를 해드리는데, 이틀간 합니다.

‘이틀 동안뭘 하냐?’ 첫째는 말 그대로 잔치입니다. 국악팀은 어떻게 해서 위로잔치를 해드리고, 그 다음 미용 팀들은 얼굴 마사지하고 화장도 해드리고 헤어디자이너는 머리 다 해드리고, 한복하는 데서는 또 한복 해드리고, 그리고 음식상을 아주 요리명장이 와서 팔순 상 요리를 각각 한분앞에 다 해드리고요, 선물도 가방이 터질 정도로 바리바리 싸드립니다. 이런 거 저런 거 많이각계각층에서 보내 오거든요. 언론사에서도 홍보하고 그러니까 어디에선 뭐 보내고 어디선 뭐보내고 그래서 그 오는 선물도 잔뜩 해서 팔순어르신 팔순잔치 선물로 그렇게 한 가방씩 드리고요. 이튿날 되면 효도관광을 갑니다. 효도관광을 가서 서해안도 가고 아산도 가서 온양온천도 하고 그렇게 해서 두 번째 되는 날은 위로하고 효도하는 관광을 또 모시고 갑니다. 그래서 이틀간 행사를 하는데 인제 각 지역의 팔순 어르신들이니까 각 구청의 사회복지사들이 1:1로다 동행해서 케어해서 그렇게 모시고 와서 잔치하고 모시고 가서 이튿날 관광 갈 때도 같이 모시고 가서 아산 온천도 가서 같이 온천도 하고그렇게 인천시민을 제가 처음으로 3년째 하고있습니다.

합동 팔순잔치는 금년이 3회고요, 이거를 인천에서 뿌리를 좀 내리게 한 다음에 전국으로 확대해 나가 시ㆍ도 광역시로 확장을 해서 전국에 합동팔순잔치를 해드리면, 그렇게 해서 합동생신잔치 합동팔순잔치 이런 일들을 계속하면 ‘착한도시가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하고요. 또 젊은이 들이 많이 본받게 되고 일반
인들이 본받게 되고 해서 점차로 착한도시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다. 합동 팔순잔치를 언론들이 신문에다 내고 하니까 여기저기서 어르신들 드리라고 선물들이 와요. 이렇게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도시, 그런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 제가 아까 앞서 말씀드렸던 착한도시가 아니겠습니까? 인천에서 시작해서 2018년까지 3년 했는데 4-5년쯤 되면 전국으로 이거를 벤치마킹하게끔 해서 확산을 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16개 시ㆍ도 제주도 전세계적으로 본이 되고 ‘아 대한민국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옛날 말이 맞구나!’라는 것을 ‘세계인들한테 자랑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보면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하고있습니다. 그래서 아까는 합동생신잔치는 90회를 넘겼다고 했는데요, 그것도 참 아까 케익점들이 케익을 이렇게 내고 있어서 좋고, 하여간 이런 미담들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2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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